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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벙커>, 장롱 면허도 자극하는 경매의 유혹
위근우 ize 취재팀장 | 승인 2014.04.01 13:47

“너는 면허 없어?” 가끔 아는 친구나 선배의 차를 얻어 타고 장거리를 움직일 때마다 듣는 말이다. 그에 대한 나의 대꾸도 늘 같다. “있긴 있는데 살인 면허야.” 정말이다. 전문학원에서 겨우겨우 딴 뒤 장롱 속에만 고이 모셔두고 있는 저 면허증을 운전의 자격이랍시고 운전대를 잡았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플레이스테이션3 게임인 <그란투리스모 6>를 할 때조차 기어 변속에 쩔쩔 매는 나에게 자동차를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들은 그래서 내가 직접 할 수 없는 운전에 대한 재미를 대리만족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XTM 채널의 <탑기어 코리아> 시리즈와 <더 벙커> 시리즈가 그러한데, 그 중에서도 최근 시즌 3을 방영 중인 <더 벙커>는 자동차와 운전이라는 것이 어쩌면 아주 두려운 것만은 아닐 것 같다는 용기를 준다.

사실 중고 자동차를 튜닝하고, 잘 고르는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더 벙커>는 철저히 오너드라이버를 타깃으로 삼은 프로그램에 가깝다. 나 같은 운전 문외한이 더욱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건 오히려 <탑기어 코리아>다. 언젠가 <탑기어 코리아>의 진행자인 김진표는 슈퍼카의 정의에 대해 ‘가지지 못해야 하는 로망 같은 것’이라 정의했는데 마찬가지로 <탑기어 코리아>에 소개되는 자동차를 볼 때 나 같은 운전 문외한이나 평범한 오너 드라이버 모두 그저 가질 수 없는 로망의 존재를 보며 황홀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는 수밖에 없다. 페라리 앞에선 모두가 평등해지는 역설.

그에 반해 <더 벙커>는 지금 차를 몰거나 차를 바꾸거나 구매할 생각이 있는 이들을 위한 정보만을 전달한다. 시즌 1에서는 정비소에 가지 않고 실비로 자동차를 쉽게 튜닝하는 법을 가르쳐주더니, 시즌 2에서는 의뢰인이 원하는 가격과 취향을 채워주는 중고 자동차를 직접 구해 튜닝해줬고, 이번 시즌에서는 아예 주제별로 자동차를 구하고 업그레이드시켜 직접 경매를 실시한다. 장롱 면허 소지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필요한 정보도 아니고, <탑기어 코리아>처럼 신기하거나 매혹적인 순간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매 시즌 새로운 포맷을 개발하며 이 프로그램은 결과적으로 운전에 대해 거부감 혹은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까지 끌어들였다. 시즌 1에서 서스펜션으로 차체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이상민을 보며 단편적이나마 자동차에 대해 공학적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시즌 2에서는 이처럼 지엽적으로 보이던 정비 기술들이 실질적으로 중고 자동차를 얼마나 그럴싸한 대상으로 변화시키는지 보여주고, 시즌 3에서는 그 그럴싸한 대상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덕분에 시즌 3에서 소개되는 자동차들은 직접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것처럼 마음만 먹으면 손에 닿을 수 있는 존재로 느껴진다. MC들이 좋은 중고차를 구매하기 위해 이런저런 요소를 살펴보는 노하우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이미 시즌 1, 2에서 예습한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더 벙커> 시즌 3은 원래 괜찮은 중고차를 구매할 생각이 있던 오너드라이버를 첫 번째 타깃으로 하지만, 동시에 시즌 1부터 호기심으로 지켜보던 이들의 현실적 욕망까지 자극한다. 요컨대 <탑기어 코리아>의 신차 랩타임이 마치 올림픽 경기를 지켜보는 것 같은 즐거움을 준다면, <더 벙커>는 마치 조기 축구회 전단지처럼 참여를 유도한다.

그래서 방청객들이 경매에 참여하고 경매사가 액수를 외치는 모습을 보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가슴 뛰는 경험이 된다. 나도 저 그라운드에 나가서 뛰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는 그런 경험. 캠핑과 출퇴근을 동시에 즐길 수 있게 업그레이드 된 아우디 A6와 산타페를 보며, 까칠한 도시 남자를 위한 컨버터블의 스타일리시한 모습을 보며 내 통장 잔고의 숫자를 셈해보게 되는 건 그래서다. 물론 여전히 내가 가진 면허는 살인 면허에 가깝겠지만, 혹시 또 아나. 그동안 갱신되지 않았던 살인 면허가 운전면허로 갱신될 수 있을지.
 

위근우 ize 취재팀장  guevara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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