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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씨가 돌아왔다
우은환 (TV끼고 사는 여자) | 승인 2015.08.17 16:15

막돼먹은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날씬, 늘씬하지 않다. 얼굴도 펑퍼짐하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뛰어난 실력도 없다. 사근사근한 성격과는 거리가 먼 무뚝뚝이다. 서른이 후딱 넘어서까지 시집도 못 간다고 구박이 심하지만 그래도 어찌 어찌하여 연애도 해봤고, 결혼 문 앞까지도 가보았다. 웬만큼 할 건 다 해봤지만, 일도 사랑도 내 맘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오리라” 수없이 스스로를 위로했었지만 도대체 이 우중충한 날들은 지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바로 「막돼먹은 영애씨」(tvN)이다.

   
▲ tvN '막돼먹은 영애씨' 메인 포스터 (제공=tvN)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8년 전이었다. 서른이었던 영애씨는 이제 마흔을 코앞에 둔, 아직도 미혼이고, 그 사이 드라마는 ‘국내 최장수 시즌제 드라마’라는 영광의 자리에 올랐다. 관찰 카메라 기법과 내레이션을 통한 새로운 형식에의 도전이 처음엔 낯설었다. 드라마인 지, 다큐인 지, 코미디인 지 도통 헛갈렸지만, 시청자들을 슬금슬금 중독 시키기엔 충분했다.

여기저기 붙은 그녀의 술살은 더 이상 옷으로 가리기 어려워졌고, 겨드랑이 털을 밀 것 인가 말 것 인가 속옷만 달랑 입은 채 거울 앞에 서있는 모습은 할 말을 잊게 한다. 무언가 먹을 땐 너무나 열정적이다. 막무가내 사장의 모닝커피에 끈끈한 자신의 침을 한가득 섞어 주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그래도 그녀는 남의 일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어찌 보면 정 많은 오지랖 쟁이 이기도 하다. 허여멀건 허벅지를 그대로 드러낸 채 잠자고 있는 그녀의 엉덩이를 영애씨 엄마는 사정없이 때린다. “이 년아 어쩌려고 그러니?” 누구는 그러고 싶어서 그럴까, 나도 좀 멋지게 살고픈데 안 되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항상 그녀의 출근길은 우거지 죽상이고, 퇴근길은 천근만근이다.

   
▲ tvN '막돼먹은 영애씨' (제공=tvN)

시즌 14로 돌아온 그녀는 더욱 영애다웠다.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향한 꿈을 키웠던 ‘낙원종합인쇄사’ 사장의 야심찬 중국 진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사기꾼 잡겠다고 몇 달 째 감감 무소식인 사장을 대신하여 원래 사장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구원투수를 영입했다. 망해가는 회사 살려내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조사장은 단순무식의 최고봉이다.

회사의 운명보다는 실직과 급여 미지급 사태가 올까봐 전전 긍긍하면서도 업무는 나 몰라라 하는 직원들이 구원투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조사장은 영업직은 월급 50% 삭감 및 인센티브제 도입, 디자인직은 인원 감축이라는 구조 조정의 첫 깃발을 올렸다. 출근 시간은 1시간 앞당기고, 근무시간 내 잡담은 금지이며, 커피나 차는 사장의 허락 하에 마시라는 싸구려 근무원칙도 발표했다. 회사 일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처리하는 야매의 주인공 라과장에겐 아줌마는 집에 가서 아이들이나 돌보라 하지 않나, 영애씨에겐 그렇게 뚱뚱해서 뭘 제대로 하겠냐는 등 인신공격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희망없는 희망퇴직을 강요하는 조사장에게 영애씨는 폭탄선언을 한다. “자르긴 누가 잘라. 내가 당신 자르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기 싫어서 내가 당신 자르는 거야. 이 염병할 놈아”

남들만큼, 아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기쁨은 잠시, 억울한 일만 줄을 섰던 지난날을 뒤로 하고 독립을 선언한 영애씨가 가야할 길은 갑(甲)도 을(乙)도 아닌 병(丙)이나 정(丁)의 길이다. 작고 조그만 회사의 사장 이영애, 어쩌면 더 많은 시련이 그녀를 힘들게 하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 부조리한 모든 것을 향해 한 방 날려줄 그녀의 막돼먹음이 있기에 영애씨의 성공을 간절히 소망해 본다.

 

우은환 (TV끼고 사는 여자)  tigerheehe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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