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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재송신, 분쟁 뚫어 낼 '송곳'은
JTBC 한정훈 기자 | 승인 2015.10.27 11:22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

최근 방영하기 시작한 JTBC 드라마 ‘송곳(연출 김석윤 원작 최규석)’에 나오는 명대사다. 대형마트에서 벌어진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사실 웹툰으로 더 유명한 작품이다. 드라마 원작은 최규석이 그린 동명 웹툰, 해고 노동자들의 현실을 아주 생생하게 전달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특히, 송곳의 대사들은 ‘역대급’이라는 별칭이 붙으며 비슷한 처지에 속한 노동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의미 있어서 더욱 슬픈 대사들. 이 웹툰의 최고 매력 포인트다. 드라마 ‘송곳’이 그리는 암울한 현실. 여기서 우리나라 유료 방송 업계가 처한 오늘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송곳은 노동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지만 노동 드라마라고 해서 노사 관계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그리지 않는다. 쾌도난마처럼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는 현실. 이게 바로 우리의 방송 바닥이다. 
 

◇ "우리 쪽 요구가 무리다! 아 고소. 고소 좋지. 하세요!"

드라마의 주 무대인 마트 ‘푸르미’ 노동자들의 조력자로 나오는 노동운동가 구고신(안내상). 그가 임금을 체불하는 악덕 고용주에게 전한 말이다. 잘못한 것이 더 많은 사업주가 고소하겠다며 오히려 엄포를 놓자 구고신은 두렵지 않다며 당당히 말한다. 그래 고소하라고.

   
▲ 지상파 유료화 반대 서명 (2011년 12월)

고소, 소송. 요즘 유료 방송 업계에도 아주 흔한 단어다. 최근 케이블TV사업자와 지상파 방송사간 ‘재송신료(CPS)'를 둘러싼 소송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더 달라는 지상파와 제대로 따져보자는 케이블TV. 두 진영이 주장하는 논리는 간단하지만 결론은 쉽지 않다. 지상파 사업자들은 현재 280원인 가입자당 재송신료를 430원까지 올려달라고 요구 하고 있다. 케이블TV 사업자들 더 이상 근거 없는 CPS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적정 수준의 CPS가 얼마냐는 것. 여러 개의 소송 중 적정 수준의 CPS가 어느 정도인지를 따져보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방송 업계의 현실이 더욱 엄혹해지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과거엔 서로 싸우다가도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다보면 답이 나온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엔 아예 그런 모임을 꺼린다. 한 SO 임원은 “몇 년 전만 해도 일이 잘 안 풀리면 지상파 정책 담당자들과 저녁에 소주한잔 하면서 해법을 찾아봤지만 지금은 괜한 오해를 살까봐 웬만하면 만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이 그 진영 간 소송전은 더욱 넓게 깊게 진행되는 형국이다. 고정형 TV에서 시작된 CPS싸움은 이제 OTT까지 옮겨 붙고 있다. TV에선 지상파 블랙아웃이 아직이지만 유료 방송 사업자가 운영하는 모바일 플랫폼에선 지상파 실시간 TV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송곳 같은 인간이"

이번에도 구고신의 대사다. 노동운동가인 구고신은 힘든 현실에서도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을 용기 있는 자’가 나온다는 진리를 ‘송곳’에 비유했다. 요즘 유료 방송 업계도 이런 송곳 같은 인간(혹은 판결)이 하나 둘씩 나오고 있다.

케이블TV와 지상파와의 재송신 소송은 현재 스테이지2로 진행 중이다. 스테이지 1이 '재송신료를 줘야 하는지, 방송을 중단해야 하는지'를 따지는 문제를 다뤘다면 2단계에선 '그렇다면 얼마를 줘야 하나'가 핵심이다.

   
 

지상파 사업자는 현실적으로 유료 방송 플랫폼이 없다면 그 역할을 다하기 힘들다. 전체 국민 중 10명 중 9명이 케이블TV 등의 유료방송을 통해 지상파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의 공익성을 구현하는데 유료 방송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유료 방송이 지상파 난시청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문가들도 이런 수신 보조 행위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저작권을 다투던 스테이지1에선 이런 유료 방송의 기여도가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비록 단독법원이지만 이런 기여도를 인정하는 곳이 늘고 있다. 울산지법은 지난 3일 지상파가 케이블TV를 상대로 제기한 CPS 280원에 관한 손해배상청구소송과 케이블TV가 제기한 송출료 청구 소송을 모두 기각했지만 재판부는 '지상파가 케이블망 재송신으로 일부 부당이득을 얻은 것'을 인정했다. 지상파가 케이블TV 재송신으로 방송광고 등 이익을 얻고 있으므로 재송신 대가와 케이블TV 송출료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에 케이블TV업계는 정부에 탄원서를 내고 최근 가입자당 재송신료(CPS)와 케이블TV, IPTV, 위성방송 등 플랫폼 사업자 송출료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JCN울산중앙방송 등 8개 SO는 이번 탄원서와 별도로 지상파 방송사들에 '전송선로설비 이용 임대차 계약 체결'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하기도 했다.
 

◇ "모두가 침몰하지 않는 배를 원했다"

이런 SO들의 주장에 대해 현재 규제 주무 기관이며 재송신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는 미래부와 방통위는 아직 화답하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답을 하지 않고 있다. 특히, 개별 SO사업자들이 지상파에 안정적인 재송신을 위해 오는 20일까지 계약을 체결할 것을 촉구하면서 "계약 미체결 방송사의 채널에 대해서는 향후 광고 송출을 중단 하겠다"고 통보했지만 정부는 구체적인 중재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다시 한번 방송 중단 사태가 올 수 있지만 말이다.

이 지점에서 송곳의 주인공인 수인의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10년 만에 안정된 직장인 군대를 나와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며 혼자 읊조렸던 말. '모두가 침몰하지 않는 배를 원했다.'
드라마 속 수인은 결국 원하는 결론을 얻진 못했지만  방송 업계에선 충분히 '좋은 답'이 가능해 보인다.
 
답을 내기 위해선 선결 조건이 있다. 바로 좋은 정부가 필요하다. 여기서 제대로 된 규제의 기제가 작동되어야 한다. 넷플릭스의 등장, 모바일 OTT의 파고, 한중FTA, 뉴미디어 약진 등 한국 방송 업계의 현실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지혜는 이런 험한 파도 속에도 쓰러지지 않는 튼튼한 배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니면 적어도 태풍 속에서도 배가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닻 역할은 가능하지 않을까.

 

JTBC 한정훈 기자  han.junghoo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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