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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와 ‘아직’사이에서
임지훈 매일경제TV 기자 | 승인 2012.06.14 18:50

방송위원회(이하 방송위)를 담당하며 기사를 쓰기 시작한 지 어느 덧 6개월이 지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방송법 시행령 개정이라는 미묘한 사안과 맞물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주제와 논의가 진행됐다. 생각나는 대로 정리를 해도 뉴미디어의 하나인 위성DMB의 사업자 선정 여부와 탄핵방송 심의 그리고 디지털TV 전송방식과 위성방송의 지상파 재전송 등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이슈들이다.

여러 주제들을 취재하면서 방송위가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지 목격했다. 매체 간 균형발전이라는 원칙에 충실하면서 한치의 양보없는 이해당사자간의 요구를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하는지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때로는 감탄하고 균형감각을 지키려는 노력에 찬사를 보냈지만 고백하자면 더러 실망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현대 실존주의 신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이미’와 ‘아직’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세상에 완성돼 있는데 사람들이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불교에서도 사람은 스스로 ‘이미’ 자성(自性)을 갖추고 있는데도 이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며 수행을 강조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방송위원회를 취재하며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이미’와 ‘아직’이란 소리가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00사안 결정됐나요?” 라고 물어보면 방송위 직원들의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 “‘아직’ 결정된 것 없어요. 잘 알잖아요.”, “‘이미’ 부장하고 국장 결재 끝났지만 상임위와 전체위원회의 올라가봐야 최종 결과를 알 수 있잖아요?”

합의제라는 방송위의 독특한 운영방식이나 여기에 맞춰 업무를 처리해야하는 직원들의 고충이 그대로 묻어나는 말이지만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름대로 질문을 해봤다. ‘방송위 직원들은 자기 소신이나 목소리를 못내는 것일까? 안내는 것일까? 왜 다른 부처처럼 자신이 옳다고 하는 정책이라면 장·차관이라도 합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할까?’

진행 중인 스카이라이프의 지상파 불법 재전송을 둘러싼 제재 논의과정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방송사업자 최초로 영업정지라는 고강도 제재가 논의됐지만 가장 중요한 제재기간을 놓고 실무자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힘을 잃었다.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이미’ 영업정지 기간 6개월이란 얘기가 나온 지 얼마 안돼 갑자기 한 달로 줄고 급기야 15일로 대폭 축소 거론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위성DMB의 지상파 재전송 문제도 마찬가지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보편적인 서비스를 어떻게 유료 서비스에 재전송하나? ‘이미’그 얘기는 끝난 것 아닌가?”, “뉴미디어는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해야하지 않나”라는 식의 재전송 불가 발언이 방송위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조금 변했다. “수익성 전망이 점점 불투명해지니까 지상파 재전송을 허용해야 스카이라이프의 나쁜 사례를 밟지 않는 것 아닌가?”, “결국 방송위원들의 개별 입장에 달려있는 것 아닌가?”라는 식으로 발언의 색깔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미’내부에서 불가로 방향을 잡은 사안이 ‘아직’ 진행 중인 사항으로 성격이 슬그머니 변하고 있는 셈이다.

권위와 권위적이라는 말은 용어는 비슷하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다. 권위는 국어사전의 뜻을 빌리자면 절대적인 것으로 남을 복종시키는 힘, 어떤 분야에서 능히 남이 신뢰할만한 기술이나 실력으로 서술된다. 권위는 세우고 싶다고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에서 남이 믿을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을 때 자연스레 생긴다는 뜻이다.

다양한 방송 사업자들을 접촉하면서 방송위에 대해 얘기를 하다보면 흔히 다음과 같은 평가를 듣기 쉽다. “믿지 못하겠어”, “OO 사업자만 감싸주는 것 아닌가” 라는 지적이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방송위의 결정이나 권위를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반어적 표현이다. 권위는 스스로 찾는 것이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자세로는 권위를 확립할 수 없다.

해답은 간단하다. 실무자 자신이 방송 정책을 담당하는 최종 정책입안자라는 생각으로 정정당당하게 자신있게 업무에 임한다면 사업자의 불만이나 정치적 입김이 들어올 자리는 없을 것이다. ‘아직’은 완성된 상태를 향해 부단한 노력과 자기성찰 즉, 힘과 끈기를 필요로 한다. 방송위 입장에서 보면 각종 정책의 승인이나 시행 전에 선제적으로 철저한 사전 점검과 꼼꼼한 사후대책에 나서는 것이다. 한번 뱉은 정책이나 말은 반드시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이미’ 굳어진 사항을 ‘아직’이란 단어로 대응한다면 방송위는 지금과 같은 악순환을 단절하기 어렵다. 민감한 사안이 터질 때마다 특정사업자의 손을 들어준다거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권위로 우뚝 서고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방송위가 되는 길은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아직’ 고민 중이라는 이유를 제시하며 오랜 시간 끝에 이상한 빛깔의 대책을 내놓는 것은 조그만 위기를 벗어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당초 원칙을 저버린 정책은 더 큰 불만과 갈등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비록 많은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고 다소 정리가 돼있지 않더라도 ‘이미’ 내부에서 굳어진 방침이라면 과감하게 결행돼야 한다. 그래야 더 큰 갈등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개혁이고 개혁은 ‘아직’이란 단어를 과감하게 ‘이미’로 바꾸는 체질개선은 아닐지? 방송위에 묻고 싶다.

임지훈 매일경제TV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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