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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채널이 필요한 이유언어문제 갈등 해소 등 다문화 가정의 국내 정착에 큰 영향 기대
손재권 매일경제 기자 | 승인 2012.06.18 13:18
   
▲ 손재권 매일경제 기자

지난 2007년 추석을 앞두고 경북 영주 선비촌의 다문화 가정을 취재한 적이 있다. 경북 영주의 선비촌은 안동과 함께 대표적인 양반 마을. 당시 기획 기사의 취지는 외국인 맏며느리가 있는 전통 양반 가문의 추석맞이는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취재 대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연락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경상북도와 영주시의 비교적 ‘잘사는’ 집안인데다가 화목하기로 소문난 집이라며 추천을 받아 취재를 할 수 있었다. 며느리는 베트남에서 왔고 나이는 21세였으며 남편은 농사일을 하는 30대 후반이었다. 실제로 취재해보니 부모님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은 며느리를 끔찍이 아꼈고 며느리도 성실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 했다.
 
이들의 추석 준비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취재 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시부모와 남편, 며느리 사이에 전혀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며느리는 한국에 온지 2년이 넘었지만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시부모와 남편도 베트남어나 영어를 전혀 할 수 없었다. 이들은 거의 의성어만 주고 받았으며 어색한 웃음이 흘렀다. 며느리는 거의 눈치대로 행동을 하는 듯했다. 시부모도 며느리에게 양반집답게 험한 말을 하지 않고 친절하게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서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언어 문제는 내재된 불행을 잉태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남편에게 부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부인은 항상 베트남 고국의 방송을 보고 싶어 한다고 했다. 베트남 방송을 볼 수 있게 되면 며느리들은 고국에 대한 향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며 남편과 가족들은 베트남 문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될 터였다. 베트남과 한국은 모두 유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방송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면 언어 문제로 인한 갈등도 다소나마 해소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평소 ‘방송’이 다문화 가정의 한국 내 정착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중 지난 6월 인터네셔널헤럴드트리뷴(뉴욕타임즈 글로벌 에디션) 1면에서 ‘안테나맨’으로 불리는 이시갑씨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됐다. 경북 영주에 사는 농부 이시갑(39)씨는 85개의 위성용 접시 안테나를 보유하고 전 세계 1,500개의 위성방송 채널을 수신, 안테나맨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지난해부터 한국으로 시집 온 외국인 신부를 위해 위성 안테나를 무료로 설치해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IHT에서는 이씨가 향수병에 시달리는 신부들의 영웅이 되고 있다며 소개했다. 이 기사에서는 2006년 경북 영주로 시집 온 베트남 여성 부이(22)씨가 “이씨 덕분에 고향과 엄마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예전보다 덜해졌다”고 전했다.

이 기사를 보면서 2007년 경북 영주에서 취재한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됐으며 아울러 ‘방송의 역할’ 그리고 방송 규제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아직 베트남 방송을 볼 수가 없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필리핀, 인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지역 방송도 방송 업자가 정식으로 수입하고 채널을 개설하지 않는 한 공식적인 방법으로는 수신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엔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일본, 중국, 대만의 방송이 송출된다. 그러나 한국 내 인구수로만 본다면 베트남, 캄보디아 등 아시아권 방송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사설 위성안테나를 설치하는 것뿐일까?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 한국식 방송을 송출하는 것만이 글로벌미디어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방송을 한국에서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토대도 마련돼야 한다.

손재권 매일경제 기자  jac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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