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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허구]의 사이에서
김하나 방송평론가 | 승인 2012.06.18 15:51

사실과 허구의 차이는 미묘하다.

예를 들어 둘 중 한 사람이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치자. 이 때 ‘뭐 그런 영화같은 이야기가 어딨어?’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나름 인생의 쓴 맛을 본 나이가 된 사람들이라면 ‘혹시 10억짜리 보험이라도 들어놓은 것 아니야?’라는 의심까지 간다해도 무리가 아닌 것이 바로 현실의 삶이다. 반대로 일상적으로 있을 법한 연애이야기를 잘 풀어놓은 영화에 대해서는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자연스러운 설정’이니 ‘일상의 재발견’이니 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곤 하는 것이 사람들이다.

요컨대 극적인 사실은 의심받고 사실적인 허구는 공감을 얻는 법이고, 이 때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는 의미가 사라진다.(먹물 독자들께서는 돌아가신 보드리야르 선생의 ‘시뮬라시옹’을 상기하시라.)

잠깐 곁가지로 가보자. 필자는 울퉁불퉁하고 힘줄이 툭툭 불거진 남자들의 근육을 제법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TV 앞에서 채널을 돌리다가 K-1이나 프라이드같은 이종격투기나 WWE같은 미국 프로레슬링을 보면 일단은 재핑을 멈추고 감상모드로 돌입하곤 한다.

물론 경기규칙은커녕 선수이름조차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근육질의 육체가 무슨 ‘우리 문화유적’도 아닐진데 ‘아는만큼 보인다’는 유홍준 선생의 말씀을 실천할 이유가 굳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근육감상의 조예가 깊어갈 무렵 필자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사람들은 뜻밖에 상당히 관대한 입장을 취하더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종격투기의 피 튀기는 혈투에 열광하면서도 쇼적인 요소가 상당히 가미된 미국 프로레슬링 역시 거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필자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오히려 서로 죽일 듯이 걷어차고 팔다리를 꺾던 이종격투기 선수들이 링 밖에서는 서로 호형호제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진짜 운동선수같은’ 모습을 보면 내심 실망하는 반면, 시합 전 카메라 앞에서 상대선수를 갈아마셔도 시원치 않을 불구대천지 원수처럼 저주하는 프로레슬러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곧 이어질 페이크(fake) 액션에 몰입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게 되면서부터는 더욱 그렇다.

이종격투기와 프로레슬링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거구의 근육질 남성들이 피와 땀을 튀기며 온몸을 던지는 것은 K-1이나 WWE나 똑같다, 하지만 이종격투기를 보기 위해선 오직 링 위에서의 승부와 기량에 집중하면 되지만, 프로레슬링의 경우에는 링을 둘러싼 배신과 음모, 갈등에 대한 사전지식없이는 온전한 이해가 어렵다.

결국 전자는 ‘각본없는 드라마’인 스포츠고, 후자는 ‘각본에 의한 드라마’인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종격투기의 사실적인 혈투를 즐기면서도 프로레슬링의 페이크 액션을 비난하지 않는 관대함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차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필자만 하더라도 그렇다. 사실이면 어떻고, 허구면 어떠랴. 육중한 근육남들의 호쾌한 몸짓과 거친 숨소리만 느낄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러한 근육의 세계가 아닌 가슴의 세계에서는 허구에 대한 관대함이 아직은 용납되지 않는 듯 하다. 최근 언론에서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대한 보도를 심심찮게 다루면서 ‘가짜 방송’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tvN의 <현장르포 스캔들>이 케이블TV 시청률 기록을 계속 갱신(<스캔들>의 경우 순간시청률은 5%를 넘었고, 작년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평균시청률은 3.8%에 달한다)하면서 <조민기의 데미지>(코미디TV)같은 유사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있다. ‘가짜 방송’ 논란은 페이크 다큐들에서 보여지는 이야기들이 실제 현장이 아닌 전문연기자들의 ‘재연’이라는 형식을 쓰면서 비롯되고 있다.

사실 다큐멘터리이든 페이크 다큐이든 디지털 6mm의 거친 질감의 화면과 적당한 모자이크라는 보여지는 모습은 비슷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론 ‘보도’와 ‘엔터테인먼트’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문제는 ‘이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인 셈이다.

만약 미국 프로레슬링을 ‘사기 스포츠’라고 비난하지 않고 ‘엔터테인먼트’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언젠가 ‘페이크 다큐’를 보도가 아닌 ‘엔터테인먼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러한 논란은 불식되겠지만, 과연 이러한 차이를 받아들이기엔 아직 우리나라 시청자들의 적응력이 얼마나 따라와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페이크 다큐의 관건은 ‘가짜 방송이냐 아니냐’라는 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허구를 허구로 즐길 수 있느냐’는 관대함의 문제라는 점이다.

김하나 방송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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