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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고려하지 않는 이종격투기의 본질
미스터 엑스 방송평론가 | 승인 2012.06.18 17:27

케이블TV를 보면서 한번씩 좌절하게 되는 경우. 했던 영화 또 하고, 했던 영화 또 하고. 어제 했던 지상파 드라마 하고, 몇 년 전에 했던 드라마 하고 또 하고, 다른 채널에서 또 하고. 다큐멘터리 채널이라는데 지상파에서 했던 철 지난 ○○특공대나 ○○도전, ○○클럽만 하고 있을 때.

아 이럴 땐 정말 내가 왜 케이블TV를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차라리 9시 뉴스나 보고, 드라마나 보고, 개그 프로그램이나 보고서 트렌드 따라잡고 회사 사람들이 흉내 내는 개그가 뭔지 알아 맞추기나 잘 할 것이지.

이것 말고도 거의 보지는 않지만 채널 돌리기를 자주 하는 내가 아주 못마땅한 건 이종격투기다. 이종격투기. 말부터 여러 가지 싸움의 기술이 혼재되어 있는 격투기라는 것이다. 타격과 유술을 주된 싸움의 방식으로 하는 이것은 깨물기, 눈찌르기, 낭심때리기 등 최소한의 몇가지 금칙만 어기지 않으면 신체의 어느 부위를 쓰던 상관없이 상대편을 쓰러뜨리면 되는 아주 단순한 게임이다. 경기의 규칙은 아주 단순하지만 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섬뜩하다.

단순한 경기규칙 만큼 선수를 보호할 수 있는 보호장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글러브를 끼긴 하지만 경기 종류에 따라서 어떤 건 정말 조폭이나 씀직한 가죽장갑만 끼고 하는 것도 있다. 또 경기진행은 어떤가. 우리의 태극전사 최홍만이나 수퍼코리안 데니스 강의 경기모습을 보더라도 정말 무지막지하다. 그 큰 체구의 사람들이 주먹으로, 발로, 무릎으로 조금의 틈만 보인다 하면 여지없이 하이킥을 날린다.

그런다고 끝이 아니다. 그래플링(grappling) 방식의 경기는 넘어뜨린 다음에 그 위에 올라탄 상태에서도 서로 조금이라도 더 상대편을 가격하기 위해 주먹을 휘두른다. 그러는 와중에 피가 튀는 건 예사다.  가끔씩 클로즈업 된 화면을 보면 쓰러뜨려야 한다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인간의 원초적인 생존본능으로 가득한 두 사람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여기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포츠, 또는 운동 경기라고 생각하는 다른 운동이 갖고 있는 일반성은 없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기술로, 더 좋은 체력으로, 더 나은 경기운용으로 상대편을 이긴다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나간다는 그런 뜻의 스포츠는 없다.

단지 정말 야수와 같은 얼굴을 한 채, 하나는 살아남고 하나는 쓰러진다는, 내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쓰러뜨려야만 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링 위에 선 두 파이터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TV를 보는 나는 단지 게임의 관중으로 한 번 보고 즐길 뿐이지 내가 참가하거나 할 수 없다. 파이터와 관중만 있지 스포츠로서 갖추어야 할 참가에서 오는 즐거움은 없다.

이런 이종격투기가 저마다 다른 리그를 표방하며, 15세 시청가 등급을 붙이고서 방송되고 있다. (여기에서 잠깐, 이종격투기 게임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TV로 방송되는 게 못마땅하다는 것이니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고리타분하게 청소년들의 정서발달이니 뭐 이런 이유를 대지는 않겠다. 또 원조가 일본이라는 이유도 대지 않겠다.

그럼에도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동물의 왕국과는 차원이 다른, 또 각본에 따라 한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는 미국 프로레슬링과도 차원이 다른, 오로지 약육강식의 생존법칙만이 있는 이종격투기라는 것이 여러 채널로 그렇게 열심히 방송되고, 프로모션돼야 하는 것일까. 이종격투기는 계속해서 시청자에게 ‘세상이라는 게 바로 이 링과 같은 거야’라는 식의 하이킥을 거침없이 날리고 있는데 말이다.

미스터 엑스 방송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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