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op
updated 2019.10.18 금 14:42
HOME 오피니언&인터뷰 케이블 살롱
‘쓸쓸하고 외로운 神’ 노인을 위하여
우은환 (TV끼고 사는 여자) | 승인 2017.02.17 10:17

얼마 전 인공관절 수술을 하신 엄마의 겨울은 힘들었다. 외출이 자유롭지 못해 집안에만 계셨던 시간은 쓸쓸하고 외로우셨나보다. 아침 기상과 함께 켜진 TV는 잠자리에 드실 때까지 하루 종일 온에어 상태였다. 봤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지만, 봤으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랴,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하시며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셨다.

한 때는 안 가는 곳 없이 세상을 주유(周遊)했건만, 이제는 방에서 거실, 거실에서 부엌, 다시 욕실로 오가다 햇살 좋은 베란다에서 잠시 창문 열어보는 것이 전부인 단조로운 하루하루다. 밖에 나갈 일은 병원 가는 것이 대부분이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TV만이 사람 소리 들을 수 있는 곳이 된 지 오래다. 무료한 시간, 이것저것 볼 것 많은 케이블 방송은 엄마의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tvN 꽃보다 할배 포스터(제공=tvN)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700만에 육박해서 그런 지 TV에는 행복하고 건강한 노년의 삶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많아지고 있다. 몇 년 전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꽃보다 할배」(tvN)는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칠 팔 십대 고령의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워 배낭여행을 떠났다. 청춘 시절과 달리 체력적으로 약해진 그들은 잘 할 수 있을까, 아프진 않을까, 혹시 내가 폐를 끼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쪽에선 아직도 난 늙지 않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한다. 그래서 도전할 수 있었던 여행. 체력적으로 벅차보였고, 호기심 충족보다 안락한 휴식을 그리워하는 듯도 했지만 그들의 낯선 도시 탐험은 성공적이었다.

올해 여든이 된 여배우 김영옥은 지난해 「힙합의 민족」(jtbc)를 통해 칠십대 래퍼에 도전했다. 육십년 가까운 연기 내공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연습하는 그녀는 동년배들에겐 희망이었고, 후배들에겐 존경이었다.

오락 프로그램이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대부분 노인 관련 프로그램은 건강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무얼 먹고, 어떤 운동을 하고, 어느 병원에서 어떻게 치료를 받아야 무병장수할 수 있는 지, 건강 정보는 끝이 없다. 그런데 채널이 너무 많다보니 방송시간을 놓치기 일쑤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지만 모든 것은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하고, 다시 보고 싶은 데 VOD로 보라하니 뭘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디지털 시대의 방법을 모르는 노인들은 답답할 뿐이다. 하여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걸리면 보고 아니면 말지라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어디 하루 종일 노인들을 위한 방송은 없을까. 특히나 아픈 엄마를 보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더 깊어져 채널 1부터 리모콘을 돌려보니 눈에 띄는 채널이 하나 있었다. 실버아이TV, 화려하거나 풍성하진 않았지만 정보 프로그램이 시선을 잡았다.

실버아이TV의 시니어를 위한 프로그램 '7080 시니어 특강', '세상을 바꾸는 시니어'(출처=실버아이TV)

「7080 시니어 특강」(실버아이 TV)의 강사진은 화려하다. 의학박사, 심리학 박사, 작가, 인생 설계 전문가, 노인 복지사, 교통전문가, 이미지 컨설턴트, 심지어 성문제 전문가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강의는 알찼다. 어떤 면에서는 당사자인 노인들 뿐 만 아니라 그들을 보살펴 드리는 가족들, 언젠가 노인이 될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고루 담고 있었다.

「세상을 바꾸는 시니어」(실버아이TV)는 성공적 인생 이모작을 위한 시간이다. 사회는 정년퇴직이란 이름으로 쉬라고 하지만 노인들은 누구나 아직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체력과 능력과 경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영광에 연연해 하지 않고 일하겠다는 겸손함까지 갖췄지만 노인을 받아주는 곳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말 무용지물이 되어가는 것 같아 살짝 두렵기도 할 것이다. 그런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이다. 자신의 속도에 맞춰 이모작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흔들렸던 마음이 안정을 찾는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나이듦을 피해갈 수는 없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우리의 고령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불행일 수도 있는 시대, 노인들의 세상이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게 TV가 노년의 일상을 힘차게 품어주었으면 좋겠다.

우은환 (TV끼고 사는 여자)  tigerheehee@daum.net

< 저작권자 © 인사이드케이블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