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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청량리588’과의 만남
"우리는 역사를 쓴다"
2016년 4/4분기 지역채널 우수프로그램 보도분야 수상자
티브로드 서울보도국 김진중 기자 | 승인 2017.02.24 18:28
티브로드 서울보도국 김진중 기자

반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우고 싶은 기억을 품어온 청량리588.

그곳이 이제 사라진단다.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기자임에도 나는 그곳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낯설고, 거칠고, 퇴폐적이고, 가까이 하기 두려운 곳으로 '청량리588'을 바라봤다. 하지만 궁금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누구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누구에게는 사라져야 할 문제의 공간으로 자리한 그 곳. 그 곳을 만났다.

 

<우리는 역사를 쓴다>

청량리 588 기사를 기획할 때 담고자 한 것은 바로 "집창촌의 역사도 역사다" 라는 것이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모를 그곳을 그냥 떠나 보내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궁금증 역시 컸다. 편견을 걷어내고 따뜻한 시각으로 그 곳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글로 목소리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왜 동대문구 지역에 집창촌이 들어서게 된 것인지... ‘청량리588’의 시작은? 그 의미는? 이제까지 재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집창촌은 정말 없어질까? ‘청량리588’의 성매매 여성들은 어디로 갈까? 등등.. 수 십, 수 백 개의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60여 년 넘는 시간 동안 ‘청량리588’이라는 그 공간을 이뤄온 사람들은 이른 바 포주라 불리는 덩치 좋은 남성들이었고, 사창가 여성들이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음지에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집창촌의 역사를 되짚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취재에 앞서 걱정이 많아 밤잠 설치고, 소화불량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다.하지만 이렇게 걱정을 안고 사는 것이 바로 내 직업 '기자'가 하는 일이다.

‘청량리 588’과 관련한 검색을 시작으로 사진 자료, 책들을 통해 먼저 그곳을 공부했다. 그리고 '청량리588'과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해 만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렇게 하면서 만난 취재원 중 한 분이 한 때 성 매매 여성들의 상담 복지사로 일한 이춘자 동장이었다. 성 매매 업이 한창 번성하던 2000년대 초반.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포주의 눈을 피해 성 매매 여성들을 만나며, 성병 검사를 받도록 독려하고, 다른 직업을 갖도록 권유하고, 상담하는 것이 이춘자 동장의 주요 업무였단다. 하나, 둘 그때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춘자 동장을 마주하며, 청량리588의 현재가 더욱 궁금해졌다.

 

<현장에 답이 있다>

띄엄띄엄 성 매매 업소가 불을 밝히고, 또 한편에선 철거가 이뤄지는 청량리588 현장. 그곳에 들렀다. 물론 벽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부딪혀보자. 무조건 부딪혀보자! 집창촌 곳곳에 설치된 cctv 카메라가 우리를 비춘 모양이다. 포주들이 하나 둘 나타나더니 "뭐 하는 거냐" 묻는다. 찍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고, 곧이어 험상궂은 사내들이 나타났다. 컨테이너에 끌려가 일단 제일 우두머리에 있는 책임자를 만났다. 문제될 건 없다. "이제 사라질지 모를 청량리 588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는 그 한마디를 시작으로 취재를 이어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궁금한 부분을 물었다. 틈틈이 시간이 나면 기획취재를 위해 '청량리588'을 들렀다. 하지만 포주들의 감시하에 업소 여성들과의 접촉은 쉽지 않았다. 취재가 진행되면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나의 숙제는 바로 업소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 역시도 무조건 부딪혀보자! 철거가 진행 중에도 영업을 하고 있는 업소 유리창 문을 무조건 열었다. 그리고 여성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언니 나 그만 말할래 말하고 싶지 않아…"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현장에 답이 있었다.

2주 가까운 시간 현장을 매일 들르며 인터뷰와 촬영을 이어가는 내 모습을 보고 업소 여성이 먼저 접근을 해왔다. 그리고 어렵싸리 재개발 조합과 포주의 눈을 피해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재개발 추진 과정 속에 기대와 걱정은 공존했다. 그리고 해결되지 못한 문제도 남아있었다. 성 매매 여성들의 걱정, 삶에 대한 막막함 그리고 또 다시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는 그 악순환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취재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만큼 담고 싶은 이야기도 참 많았다.

하지만 모두 다 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시 한번 고민하고, 토론하고 밤샘작업을 하며 '청량리588 홍등의 역사, 그리고 명과 암' 이라는 기획 보도물이 나왔다. 의미 있는 취재였고, 도전이었다.

 

모든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곧 사라질 청량리588의 역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꽃피는 봄. 나는 또 현장에서 그 이야기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다. 나의 천직은 기자임을 되뇌며 말이다.

티브로드 서울보도국 김진중 기자  zzung8888@tbroa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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