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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세심하게, 그리고 효리답게
우은환(TV끼고 사는 여자) | 승인 2017.07.19 10:49

방풍림으로 둘러싸인 집 대문을 들어서 한참을 걸어가야 안채가 나왔다. 문을 없앤 실내는 사방이 한 길로 연결되어 있었고, 열린 공간 사이로 자연과 사람은 하나였다.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고 느리게 드나드는 여러 마리의 강아지와 고양이를 인간과 동물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이 집의 주인은 이효리.

파워풀한 섹시댄스로 국민요정의 이미지를 한꺼번에 벗어던졌던 그녀는 결혼과 함께 소길댁이 되었다. 한 순간도 대중의 관심 밖에 존재할 수 없었던 그녀는 자연 속에서 조용한 삶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보고 싶은 대중들은 제주도 소길리 그녀의 집 앞을 서성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인종을 눌러보기도 했다. 결국 “친애하는 제주 관광객 여러분, 죄송하지만 저희 집은 관광 코스가 아닙니다”라는 안내문을 SNS에 올리며 대문을 더 꽁꽁 걸어 잠갔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닫혔던 대문을 활짝 열었다.

'효리네 민박' 프로그램의 주인공 아이유, 이상순, 이요리(사진=JTBC 홈페이지)

「효리네 민박」(jtbc)이 알려진 것은 지난 4월이었다. 아무리 방송 프로그램이라 하여도 효리가 낯선 사람들을 자신의 집에서 쉬어가게 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뉴스였다. 민박객 모집 경쟁이 치열할 것은 예상했지만 홈페이지 신청 코너엔 총 21,764건의 사연이 올라왔다. 태교여행에서부터 아이 열 명을 동반한 가족 여행에 심지어 퇴사를 불사하는 새 출발 여행까지. 가수 이효리 부부가 잠들었던 침대에서 잠자고, 그들이 사용했던 욕실에서 샤워하고, 그들이 만들어주는 아침을 먹고, 차를 마시고, 함께 지는 해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하루를 이야기했던 기억은 설레는 추억 아닐 수 없다.

「효리네 민박」은 솔직했다. 오랜만의 예능, 일거수일투족을 찍어대는 수많은 카메라를 보는 그녀의 눈빛엔 묘한 부담이 들어있었다. 예능감을 잃었다는 말이 듣기 싫었는지 끊임없이 무언가 보여주려 궁리하는 모습은 귀엽기도 했다. 하지만 천하의 이효리 아니겠는가. 몸 안에 숨겨져 있는 예능 감각은 꺼지지 않는 태고의 불처럼 순식간에 살아났다.

베개 자국 남아있는 부스스한 얼굴을 숨기지 않았고, 요상한 요가 자세로 침대에서 내려오기도 하고, 무릎이 쑥 나온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집안을 활보했다. 카메라에 보여 지는 집안은 방송을 위해 굳이 정리한 흔적이 없었다. 그저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정도의 청소와 민박객들을 위해 커튼이나 가림막을 설치하는 정도의 조치뿐이었다. 커피 머신에는 커피를 내릴 때 튄 검은 유혹의 방울들이 짙게 묻어있었고, 부엌 그릇이나 양념통은 삐뚤빼뚤 무심한 듯 일상의 질서 속에 널부러져 있었다. 음악 커플답게 벽면 선반 위엔 CD들이 가득했지만 제 멋대로 꽂혀있긴 그릇들과 마찬가지였다. 꾸미지 않은 일상 그대로의 모습, 그것이 효리네 집이었다.

「효리네 민박」은 세심했다.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의 걱정도 앞섰겠지만 효리 부부는 민박객들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새 이부자리와 슬리퍼를 마련하고, 손님들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차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장을 보았다. 제주를 구경하러 손님들이 집을 나서면 이들 부부는 노곤한 여행지의 잠이 묻어있는 손님들의 이부자리를 볕 좋은 곳에 내다 널었다. 주인은 채식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의 바비큐 파티와 캠프화이어를 위해 장작을 쪼개고, 고기 구을 준비를 했다. 도시를 벗고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주인장은 자리를 피해주는 듯 했지만, 주변을 떠나지 않은 채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는 모습이 마음씨 좋은 민박집 주인 부부 그 자체였다. 거기에 신의 한 수는 민박집 직원으로 함께 한 가수 아이유였다. 16세에 데뷔하여 25세가 된 지금까지 일만 해온 그녀에게 민박집은 또래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었고, 평범한 일상과 조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유명해지고 싶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고 싶지만 잊혀지고 싶지 않다”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뤄가고 있는 이효리의 민박 프로젝트. 솔직함과 세심함 때문에 편안했고, 그녀가 즐겨 입는 긴 가운과 몸 여러 곳에 새겨져 있는 문신으로 정의되는 효리 스타일이 있어 신선했다.

우은환(TV끼고 사는 여자)  tigerheehe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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