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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까 줄일까, 케이블TV 가입자의 선택은?
JTBC 한정훈 기자 | 승인 2017.07.28 14:33

케이블TV가입자들은 ‘K마트’급 서비스를 받기 위해 ‘노드스트롬 백화점’급 돈을 내기에 지쳐 있다.(Cable subscribers are tired of paying Nordstrom prices for Kmart service)

얼마 전 미국의 한 방송 관련 전문지(디사이더)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지 않은 미국의 MSO 사업자’들을 비판하며 쓴 표현이다. 한동안 승승장구하던 미국 케이블TV사업자들이 인터넷 가입자의 증가로 위기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 넷플릭스, 훌루 등 OTT사업자들이 유료 방송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고 페이스북, 구글 등 소셜 미디어들도 방송 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그렇다. 미국 케이블TV사업자의 위기는 ‘외계인들의 공격’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그들의 위기가 순전히 外因에서 기인한 걸일까. 이 글은 이런 의심에 출발한다.

 

 

◇ ESPN의 가입자 감소, ‘코드 커팅때문인가 코드 쉐이빙’ 때문인가

미국 방송 관련 전문지 디사이더(desider)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미국 스포츠 유료 채널 ESPN의 가입자는 290만 명이나 감소했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감소폭이다. 애초 전문가들은 ESPN의 가입자 감소가 케이블TV의 위기라며 넷플릭스, 홀루 같은 OTT서비스로의 가입자 이동(코드 커팅) 탓이라고 생각했다.

코드 커팅과 코드 쉐이빙 때문에 5개의 주요 ESPN 네트워크는 2009년 이래로 약 6천만 구독자를 잃었다. (도표=By Adam Gajo, Derek Baine, John Fletcher and Scott Robson, "Sports giants like ESPN suffering from cord cutting, cord shaving", SNL Kagan)

그러나 디사이더의 팩트 체크 결과는 사뭇 달랐다. ESPN 가입자가 290만 명이 감소했지만 미국 MSO의 전체 유료 채널(페이 TV) 가입자는 55만 명밖에 줄지 않았다는 결과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이는 ‘ESPN을 보지 않기로 결정한 290만 명 중 240여 만 명은 여전히 유료 채널(페이TV)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케이블TV 가입자들이 맹목적으로 코드 커팅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 미국 케이블TV 가입자들은 여전히 유료 채널은 시청하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채널인 ESPN은 빼고 봤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말해 ‘케이블TV 시청료’ 줄이기에 미국 시청자들이 나섰다는 방증이다. 고가의 방송 서비스를 해지하고 저가로 갈아타는 것 이른바 ‘코드 쉐이빙(Cord shaving)’ 현상이 케이블TV 가입자들 사이에서 본격화된 것이다.

디사이더는 미국 케이블TV 가입자들이 코드 커팅 대신 코드 쉐이빙을 선택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분석했다. 그 첫 번째는 지상파 등 방송을 유료 방송 대신 직접 수신하긴 너무 까다롭다는 것. 이는 유료 방송의 성장에 지상파 방송의 난시청이 큰 역할을 한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쉽게 이해된다.

두 번째 이유로는 ‘케이블TV 사업자’들이 주는 편리함을 꼽았다. 이에 대해 디사이더는 “케이블TV MSO는 모든 유료 TV고객과 그들의 시청 습관을 안다”며 “ 그래서 가입자들이 어떤 패키지를 원하는지 어떤 무료 서비스를 원하는 지 등을 파악에 용이하다”고 분석했다.

 

 

◇ 미국은 코드 쉐이빙을 결정했지만...

미국 케이블TV 시청자들을 코드 커팅 대신 일단 코드 쉐이빙을 선택했지만 이 선택 역시 시한부로 보인다. 케이블TV 사업자들의 지속적인 투자가 없는 한 코드 커팅은 시간문제다. 디자이더의 분석대로 ‘미국 케이블TV 가입자들은 K마트 서비스를 위해서 노스트롬 백화점 가격을 내는 것에 지쳐있기 때문’이다. 익숙함을 이유로 다른 방송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았던 미국 인들의 변심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얻는 가치와 지불하는 가치’의 차이를 늘 비교하고 고민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케이블TV사업은 위기임이 분명하다. 미국 역시, 케이블TV MSO(MVPD)들이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 방송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에 매우 게으르다. 반면, 아마존 프라임, 넷플릭스 등 OTT서비스 사업자들은 개인화 방송 서비스(큐레이션) 등을 이용해 그야말로 ‘취향저격’ 중이다. 그나마 미국 케이블TV 사업자 중 컴캐스트 정도만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그 영향 때문인지 컴캐스트의 가입자는 매년 소폭이지만 증가 추세다.)

전문가들은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케이블TV 등 유료 방송은 수년 내 코드 쉐이빙(cord shaving)이 아닌 코드 커팅 문제에 직면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경우 ESPN, 디즈니 주니어와 같은 독점적 콘텐트를 생산하는 사업자도 케이블TV에서 점점 외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료 방송 채널 가입자 감소->유료 방송 채널 공급 감소->케이블TV 가입자 감소’라는 빈곤의 악순환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 한국은 코드 쉐이빙인가? 코드 커팅인가?

한국의 유료 방송 시장이 처한 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미국에 비해 더욱 심각하다는 분석도 있다. 유료 방송 가격이 한국에 비해 최소 10배에 가까운 미국 등 외국의 경우 코드 쉐이빙을 할 여력이라도 있지만 우리의 유료 방송은 가격은 밀면 떨어지는 벼랑 끝이다.

2015년 기준 SO전체의 가입자 당 월 평균수신료는 5천원 남짓이다.(도표=2016년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

우리나라의 경우 코드 쉐이빙 현상이 이미 10년 전에 시작됐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위성방송, IPTV와 경쟁에서 서비스가 아닌 ‘가격’을 유일한 무기로 결정한 유료 방송 사업자들이 자초한 일이다. 덕분에 우리나라 시청자(가입자들)은 만 원 이하의 가격에 80개 가 넘는 방송 채널을 보는 ‘초절정 코드 세이빙’을 즐기고 있다.

코드 쉐이빙을 경험했으니 우리에게 남은 건 코드 커팅뿐이다. 특히, 최근 ‘네트워크를 필수로 여기지 않는 젊은 시청자(이용자)들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이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시청자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네트워크는 콘텐트 사업자들에게도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코드 커팅을 넘어 전통적인(혹은 그동안 기여도가 높은) 유료 방송을 살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물론 이런 짧은 글에서 그에 대한 해답을 내리는 것은 가당치도 않고 쉬운 일도 아니다.) 해답은 바로 ‘독자적인 콘텐트 및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특히, 지역에 기반을 둔 케이블TV의 경우 지역 관련 콘텐트에 대한투자가 시급하다. 다행히 이번 문재인 정부가 공동체 라디오 등 지역 미디어를 활성화하고 부활시킨다는 ‘미디어의 건강한 발전’ 공약을 발표한 만큼, 이 분야에 대한 케이블TV사업자의 투자는 어느 정도 가시적인 효과도 예상할 수 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 유료 방송이 처한 상황을 보면 하나의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에 다양한 분야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이 부분에서 가정 우려스러운 점도 ‘정부의 의지’다. 앞서 지역 미디어 활성화를 지적했지만 문재인 정권의 미디어 전략 중 첫 번째는 여전히 ‘표현의 자유, 언론의 독립성 강화’다. 공영방송을 손보겠다는 의지가 강한데 유료 방송의 역할이나 활성화에 대한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유료 방송 활성화를 담당할 또 다른 축인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변신했다. 미래부 때와 마찬가지로 ‘방송’이 주가 아닌 ‘객’이 된 모양새다. 그러나 유료 방송은 그리 쉽게 포기할 매체가 아니다. 지금도 100가구 중 97가구는 유료 방송을 통해 방송 콘텐트를 본다. 그들을 존중하라.

 

JTBC 한정훈 기자  han.junghoo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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