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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국회’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
JTBC 한정훈 기자 | 승인 2017.09.29 15:24

국회가 여야 쟁점 법안인 ‘방송법’ 개정 논의를 시작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된 그 문제의 법이다.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등이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방송법 개정안을 놓고 논의를 시작했으나 편성위원회나 공영방송 경영진 구성 시기 등 여야 입장차가 커 40분 만에 논의가 중단됐다. 쉽지 않은 모양새다.

 

 

◇20대 국회도 ‘식물국회’?

오랜만에 열린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회의에서 쟁점이 된 방송법은 지난해 7월 국회의원 162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된 법으로 ▲공영방송 여야 추천 이사 7대6 구성 ▲사장 선출 시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한 특별다수제 ▲사용자와 종사자 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 등을 골자로 한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허욱 부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위원회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뉴스1)

물론 이 법안에 대해 야당은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은 노사 동수로 편성위원회를 구성하는 조항과 공영방송 경영진의 3개월 내 교체라는 부칙 등에 반대했다. 법 개정을 빌미로 여당이 현 공영방송 사장단을 교체하려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과기정위 간사인 신경민 의원은 “한국당이 편성위원회는 반대했지만 특별다수제 등은 특별히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당은 ‘여권의 방송법 개정을 공영방송 사장 교체’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안에 대한 추가 논의도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이와 관련 국민의당도 공식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하진 않았지만 사장 선임 방식 등을 두고 자체안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과기정위의 가장 민감한 분야인 ‘방송법 개정’이 삐걱거릴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올해 과기정위도 성과를 내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와 관련해 과기정위 소속 한 의원은 “20대 국회도 벌써 희망이 없어 보인다”고 자조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과기정위의 경우 방송 이외 통신이나 개인정보, 과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논의해야 할 사항이 매우 많다. 방송 관련해서도 지상파가 아닌 유료 방송 구조 개편 등에 대한 사항도 산적해 있다. 그러나 진전이 없다. 야당의 한 의원은 “방송 때문에 다른 논의들이 전혀 진척이 안되고있어 답답하다”며 “하반기 국회에는 상임위를 옮기려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 상임위 차원에서도 식물 국회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과기정위에서 과학과 방통위 관련 업무만 떼어내는 상임위 분리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방통위와 과학기술방송통신부의 방송, 통신 관련 업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과학기술방송통신부의 과학 관련 업무 등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아직 결론이 나진 않았다.) 이 역시 정답은 아니지만 방송 때문에 모든 논의가 중단되는 상황은 면해보자는 고육책이다. 그러나 모든 정국이 적폐 청산이냐 방송 장악이냐라는 프레임에 묶여 있기 때문에 공영방송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방송 시장 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식물 국회에서 과실을 따는 방법은?

전문가들은 상황이 이렇다보니 방송 통신 분야에서 올해도 새로운 정책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나 국회 정책에 사업자들이 기대는 구도는 바람직하진 않지만, 정책을 통해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국회가 ‘공영방송 적폐 청산’이라는 프레임에 묶여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공영방송 정상화의 속도가 생각보다 더딜 수 있다는데 있다. 공영방송 정상화 후 방송 시장 구조 개편(시청자 중심)에 나서겠다는 정부의 로드맵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지난 5월 정권 교체 후 방송 시장의 비정상의 정상화도 바로 진행될 것으로 예견됐지만 ‘구체제 인사’들이 버티기에 나서면서 100일 넘게 한 발짝도 못나가고 있다. 그 사이 MBC와 KBS, 두 공영방송이 ‘공정 방송’을 기치로 파업에 나섰지만 장기전을 넘어 진지전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적폐로 찍힌 방문진 이사들은 버티고, 교체 대상으로 지목된 KBS경영진들은 무대 뒤에 숨었다.

지난 7일 MBC노조원들이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고영주 이사장과 김장겸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2017.9.7/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늪에 빠진 상황. 이는 우리나라 방송 사업자와 시장을 요약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나 상황 탓을 하긴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이제 우리는 식물 정국에서 결과물을 얻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혹은 나는) 해외 미디어가 처한 상황을 항상 부러워하며 글을 쓰지만 그들도 고민은 분명히 있다. 그들의 놓인 경쟁 상황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절박함이다.

그들이 절박함을 이겨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페이스북이 얼마 전 발표한 콘텐트 투자 계획은 변화하는 사업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페이스북은 내년에 콘텐트 분야에 1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스마트폰 제조사라고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또 플랫폼에서 영상 콘텐트를 양산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케이블TV 사업자인 컴캐스트도 방송사들 뛰어넘어 스마트홈을 지배하는 전략을 선언했다. 셋톱박스를 통해서 가정의 허브가 되겠다는 전략인데 미국 가정에 셋톱박스를 공급한 자신감이이 묻어난다.

넘쳐나는 캐릭터로 고민이 없어 보이는 디즈니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달 디즈니는 자체 OTT라이브 서비스를 하겠다고 밝혔다. 밥 아이거 회장은 2개의 OTT서비스를 하겠다는 계획인데 콘텐트를 중심으로 한 가정용 상품과 ESPN을 앞세운 스포츠 채널이다. 이를 위해 스타워즈 등 인기 콘텐트를 넷플릭스에도 공급하지 않겠다는 전략인데 유료방송시장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까지도 흔들 수 있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나라 사업자들도 움직이고 있다. 최근 스카이라이프나 MSO들이 본격적으로 OTT사업에 진출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기다리지 말고 변화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식물 국회 정국에서 과실’을 얻을 수 있다. 과실을 원하는 크기로 키우기 위해선 햇볕이라는 외부 변인도 중요하지만 직접적인 거름이 필요하다. ‘찾아야 찾아진다.’

JTBC 한정훈 기자  han.junghoo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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