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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규제와 정책이 만나면?
JTBC 한정훈 기자 | 승인 2018.03.29 19:04

 

“VOD 부문을 주요 시장으로 분류해야 합니다.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이 바뀌고 있습니다.”

허욱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2017년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 결과를 보고 받는 전체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유료방송시장의 다시보기(VOD) 매출액이 매년 급증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허욱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현안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VOD 매출액은 2016년 기준, 7,055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6% 성장했다. 이에 따른 비중도 커져, 유료방송 수신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4년 21.4%에서 24.4%로 증가했다. 그러나 VOD는 아직 방송법상 진흥 대상도 규제 대상도 아니다.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은 “VOD를 이제 방송 정책 수립 시 아주 중요하게 고려해야한다”며 “시청자(가입자)들의 TV시청 패턴도 변하고 있어 정부 규제, 진흥책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방송의 쓸쓸한 페이드 아웃(fade out)

국내 방송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수익 구조에서부터 사업자까지. 변화는 특정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이는 방통위가 최근 발표한 17년도 ‘방송시장 경쟁 상황 평가’ 자료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방송 시장의 지각 변동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장을 기반으로 한 구체적 숫자(경쟁 상황 평가)로 다시 한번 분석해볼 가치가 있다. 이 해석은 미래 시장 예측을 위해서도 유용하다.

최근 방송 시장의 변화 특징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아날로그 방송 시대의 종언 △비실시간 방송(VOD, OTT)의 급성장 △방송 광고 급감, 인쇄 매체의 몰락 등이다.

국내 방송 시장에서 아날로그 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줄고 있다. 2016년 유료 방송 시장 가입자는 3000여 만 명(2,996만 명)으로 전년 대비 6.3% 증가했다. 이 가운데 디지털 가입자가 2,380만 명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아날로그 방송 가입자는 280만 명으로 전년 대비 40%이상 감소하면서 관련 조사 이후 처음으로 점유율이 10% 이하로 떨어졌다. 물론 이는 아날로그 방송과 대체 효과가 큰 8VSB 가입자(336만 명)를 제외한 수치로 논란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순수 아날로그 방송 가입자의 감소 추세는 불변의 진실이다.(방통위는 올해부터 국내 유료 방송 시장을 디지털, 8VSB, 아날로그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10% 미만의 점유율은 사실상, ‘시장 퇴장 수순’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와 함께 비실시간 방송의 성장은 또 다른 변화다. 이 중 다시 보기(VOD) 시장의 성장은 무섭다. 방통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VOD 매출액은 7,055억 원이다. 이 속도면 매출 1조 원 돌파는 시간문제다. 전체 유료 방송 수신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분 1까지 증가했다.

VOD 시장의 확대는 질적 성장이 더욱 주목할 만하다. IPTV와 푹TV 등 OTT서버스의 등장 이후 VOD 콘텐트의 다양성은 매우 증가했다. 지상파와 종편, CJ 등 고만고만한 실시간 TV콘텐트로선 플랫폼 차별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IPTV는 1인방송 콘텐트(MCN), 아동 전문 콘텐트, 푹TV 등은 퀵 VOD(실시간 중 VOD서비스), 중국 드라마, 일본 드라마 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방송광고 시장의 급감은 전통적인 시장의 질서까지 바꾸고 있다. 기존 광고를 수익 대부분으로 삼던 방송 사업자들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유료 콘텐트와 모바일 유통을 강점으로 한 OTT 등의 신흥 방송 사업자들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

2016년 전체 광고 시장 규모는 10조 4,338억 원으로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 그러나 방송 광고 시장은 2조 9,133억 원으로 전년 대비 9.0%가 감소했다. 방송 광고 시장은 10년 전 3조 원을 돌파한 뒤 매년 감소하고 있다. 같은 기간 협찬 매출이 7,343억으로 소폭 증가하긴 했지만 방송 광고 시장 상황은 매년 나빠지고 있다.

반면, 모바일 광고 시장은 매년 급성장 중이다. 제일기획의 자료에 따르면 모바일 광고 시장은 올해도 10% 이상 성장하며 시장 점유율 2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모바일과 PC를 합친 디지털 광고 시장은 4조 원을 돌파하며 방송 광고 시장(지상파TV, 케이블, 라디오 등)을 처음으로 추월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로 인해 방송 사업자들의 채산성은 매년 악화되고 있다. 특히, JTBC를 제외한 종편은 정부의 콘텐트 투자 확대 압박에 올해 적자 규모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또 지상파 방송사들은 평창올림픽, 러시아 월드컵,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등 이른바 빅 3 종합 스포츠 중계로 인한 중계권료 지출로 더욱 힘든 한 해를 보낼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 “방송 규제 전면 철폐”... 우리 정부는?

방송 시장은 이렇게 변하고 있지만 방통위, 과기정통부 등 방송 담당 주무 부처의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다. 슬픈 현실이다. 방송 시장 개편과 관련해선 문재인 정권 출범 전부터 논의되는 문제들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공영방송 지배 구조 개선은 KBS와 MBC 사장 교체 후 사실상, 논의가 중단됐다. 오는 6월이면 일몰이 되는 유료 방송 시장 합산 규제(전체 방송 시장의 3분의 1 점유 규제)는 국회에서 공전 중이다. 4월 국회에서 원포인트 논의가 있을 예정이지만 현재까진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 보단 일몰을 2년 정도 유예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김성수 민주당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한 국회 언론성공정성 실현모임이 통합 방송법(방송법, IPTV법 등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방송법)을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합 방송법은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3년 잠깐 논의됐지만 사업자들의 반대 등을 이유로 논의가 진전되고 못했다.

국회 공정성 실현 모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공영방송에 대한 규정 등 방송의 분류 및 공정성 강화를 중심으로 통합방송법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뿐만 아니라 산업적인 부분도 함께 통합법에는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언론 공정성 포럼은 이르면 다음 달 몇 차례의 공청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에서 최근 일본 정부가 방송과 통신 사이의 규제 차이를 없애겠다며 지상파 방송 규제를 전면 철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지난 3월 22일 교도통신과 연합뉴스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TV와 라디오 방송사가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방송 기준, 방송심의회 설치, 보도·오락 등 장르별 균형 편성 의무 등을 철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방송사에 기계적 균형을 요구한 ‘공정성’ 관련 방송법 조항도 삭제하고, 한 개의 기업이 여러 개의 신문, 방송 등의 매체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조항이나 외국 자본의 참여에 대한 규제도 없앨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규정은 공영방송 NHK를 제외한 모든 방송사에 적용된다. 아베 정권은 오는 2020년 시행을 목표로 이르면 가을 임시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이 법안 개정안이 통과되면 공영방송을 제외한 민영 방송사의 방송 규제는 대부분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일본 정부가 방송에 대한 정부 규제를 사실상 없애 방송과 인터넷 분야 규제를 같게 만들겠다는 의도에서 추진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향후 방송의 올 IP화를 대비한다는 의미도 담겼다.

아베 정권은 이를 통해 방송 사업 경쟁 활성화와 신규 사업자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물론이 정책이 다소 급진적인 만큼 방송업계와 시청자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급변하는 방송 시장의 변화를 정부가 따라 잡을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일과 할 필요가 없는 일을 구분’해 집중할 필요도 있다.

우리 정부도 일본의 이런 정책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 원래 나쁜 규제는 없다. 나쁜 정책과 함께하는 규제가 나쁠 뿐이다.

JTBC 한정훈 기자  han.junghoo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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