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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와 X맨의 만남...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
JTBC 한정훈 기자 | 승인 2018.06.29 18:23

콘텐트 공룡 디즈니가 방송과 영화 공룡 21세기 폭스를 71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밝힌 거래에 대해 미국 법무부(The Department of Justice)가 지난 6월 27일 이를 최종 승인했다. 이 절차로 지난해 12월부터 세계 콘텐트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빅딜은 마무리됐다.

미국 법무부의 이런 반응은 AT&T의 타임워너 인수가 ‘소비자에 피해를 주는 내부 수직 결합’이라며 반대 소송까지 낸 것에 비하면 매우 빠른(?) 것이다. 결국 이 소송은 대법원까지 가서 미국 법무부가 지긴 했지만 ‘대형 인수 합병’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부정적 시선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 평가와는 달리, 미국 콘텐트 시장은 매우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선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대형 인수 합병이 연이어 터졌다. AT&T의 타임워너 인수, 디즈니의 폭스 인수가 그것이다. 이런 인수 합병을 가능하게 한 것 다름 아닌 기술 거인들(Tech giant)들의 ‘위협’ 때문이다.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가 뉴 미디어의 ‘보이지 않는 위협(the phantom Menace)’에 뭉치는 형국이다.


◇ 방송사들의 합종연횡, 이유는 ‘넷플릭스’

AT&T와 타임워너, 디즈니와 21세기 폭스의 만남은 방송 시장의 위기감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가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위성방송, IPTV 등 다수의 방송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는 AT&T의 타임워너 인수(HBO, CNN 등 수많은 유료 콘텐트 채널 보유)를 허용하면서 ‘수직 결합(vertical merger)'가 과거에 비해 소비자(시청자)들에게 주는 피해가 적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오히려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처럼 방송 시장에서 최근 급속히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기술 거인들(tech giants)들에게서 방송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사업자들의 대응이라고 판단이다. 이번 합병을 승인한 미국 연방대법관 리차드 레온(Richard Leon)은 172페이지 분량의 판결문을 통해 “이번 거래로 유료 방송 가격이 인상되거나 시장의 경쟁 상황이 악화된다는 법무부의 주장은 맞지 않다”며 “과거처럼 시장 내의 수직 결합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디즈니의 폭스 인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디즈니가 폭스를 52억 달러(실제는 70억 달러 이상으로 상승)에 인수하겠다고 밝힌 것도 콘텐트 시장, 스포츠 채널 시장 등에서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 미국 법무부도 이런 점을 고려해 합병 승인을 빨리 내렸다는 평가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엑스맨:아포칼립스' 포스터 © News1star

이 두 회사의 합병은 방송사들의 마지막 희망인 ‘콘텐트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디즈니와 폭스가 한 배를 타게 되면 어벤저스(블랙팬서, 스파이더맨)와 X맨(울버린 등)이 같은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게 된다. 기술 기업들의 따라올 수 없는 매력 적인 경쟁력이다.

특히, 두 회사의 합병이 OTT시장에서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OTT시장은 넷플릭스와 유튜브, 아마존프라임(Amazon prime)에 장악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정액 요금제와 추천 시스템을 앞세워 VOD 소비자들을 크게 공략하고 있다. 과거 방송과 영화 콘텐트가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스스로 만드는 오리지널 콘텐트가 핵심 상품이다. 넷플릭스는 올해만 8조 원 가량을 콘텐트를 수급하는데 사용할 계획이다. 여기에 최근 아마존 프라임도 가세해 연간 4조 원의 비용을 콘텐트를 만들고 사는데 쓸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존프라임은 최근 최고 콘텐트 책임자를 NBC방송사로부터 스카웃했다. 넷플릭스의 OTT가입자는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에서 디즈니는 폭스를 인수해 컴캐스트, 타임워너 등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OTT ‘훌루(Hulu)'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계획으로 알려졌다. 훌루는 넷플릭스와 유사한 OTT서비스다. 현재 CBS 등 미국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트를 주로 공급하고 있는 훌루는 그나마 넷플릭스의 파상 공세를 막을 수 있는 사업자로 불린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콘텐트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푹(pooq)‘과 같은 서비스 모델이라고 보면 된다.

디즈니는 폭스 인수로 훌루의 지분을 60% 이상 보유하게 됐다. 이를 통해 OTT시장 지배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오리지널 OTT 콘텐트도 만들어 오는 2019년에는 넷플릭스에 더 이상 콘텐트를 공급하지 않기로 했다.(이 경우 넷플릭스는 아이언 피스트, 제사카 존스 등 마블 히어로를 모티브로 하는 드라마를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된다.)

일각에선 디즈니가 훌루는 주로 성인을 타깃으로 하는 OTT서비스로 남겨두고 어린이를 위한 키즈 전용 OTT를 론칭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 미국發 빅뱅...그러나 한국은 소확행?

이렇게 미국 시장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한국 방송 시장은 정중동이다. 사업자들은 가입자 확대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정부나 국회도 움직이질 않는다. 6.13 지방 선거 이후엔 본격적인 방송 시장 구조 개편이 될 것이라는 희망은 이제 회의적으로 바뀌고 있다. 방통위 등 정부와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공영방송 이사 선임’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이런 사이에 지난 27일 유료 방송 시장 합산 규제가 일몰돼 ‘방송 가입자 확보 무법 지대’가 됐다. 현재 바른미래당, 정의당 등이 합산 규제를 연장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마련 중이지만 국회 원 구성은 7월 말이나 되어야 가능할 전망이다.

심지어 정부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KBS수신료, 중간광고 등은 추진하지 않고, 종편과 보도채널의 방송통신발전기금 징수율 인상, 의무편성 폐지 등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책만 내놓고 있다. 시장 정책이 아니라 사업자 정책만 추진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나라 방송 시장은 점점 활력을 잃고 있다. 이미 10대들은 TV에서 더 이상 새로운 지식을 얻지 않는다. 그들에겐 TV스타보단 유튜버들이 더욱 친근하다.

물론 정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놓은 방송 정책들은 시장에 온기(溫氣)를 불어넣지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지지부진하다. 방통위는 움직이지만 정작 주무부처로 보이는(?) 과기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 계속될 경우 한국 방송 시장의 경쟁력은 점점 더 약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가 말하는 혁신성장이 가능하려면 혁신할 주체(방송사)가 버티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반기를 기대해 본다.

 

JTBC 한정훈 기자  han.junghoo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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