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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들이여 영원하라!
공희정 콘텐츠평론가 | 승인 2019.10.15 09:07

꼭 동네 골목길 어딘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같았습니다. 한 때는 올림픽 영웅이었고, 코트의 제왕이었으며 감히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록의 소유자인 스포츠 영웅들이었지만, 축구 한번 해 보라고 모아놓고 보니 그냥 동네 아저씨들이었습니다.

<뭉쳐야 찬다>(jtbc). ‘대한민국을 뒤흔든 전설의 승부사들의 도전기’입니다. 승부욕으로 불타올랐던 청춘, 수많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 영광의 월계관을 거머쥐었던 스포츠 전설들의 성장 스토리를 그릴 것이라 하는데요, 사실 성장 보다는 그들 안에 잠자고 있던 순수함을 탐험하는 시간인 듯합니다.

출연자들은 쟁쟁합니다. 천하장사 이만기, 명불허전 농구 대통령 허재, 야구계의 신 양준혁, 한국 마라톤 최고 기록 보유자 이봉주를 비롯하여, , 도마의 신 여홍철, 레슬링의 천재 작은 거인 심권호, 사격의 황제 진종오, 대한민국 대표 파이터 김동현, 테니스의 신화적 인물 이형택,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 안정환까지. 그리고 입담계의 거장인 김성주, 정형돈, 김용만이 함께 합니다. 출연자 중에서 축구를 해 본 사람은 안정환뿐이죠. 그러다보니 당연히 그가 이 어리버리 축구단 ‘어쩌다 FC'의 감독이 될 수 밖에요.

스포츠 영웅들이지만 축구 이론에 대해서는 깜깜했고, 축구 코트를 누비기에는 체력이 너무 허약했습니다. 하지만 연습과 경기에 임하는 그들의 눈빛만은 전성기 시절의 매서움을 잃지 않았습니다. 뭐 아쉬운 건 눈빛만 그랬다는 것이지만요. ‘어쩌다 FC'의 첫 경기 상대는 사회인 축구팀이었습니다. 승리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왕년의 스포츠 스타들인데 0대 11로 패하리라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공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이기에 수시로 수비의 허점은 노출되었고, 패배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뭉쳐야 찬다>가 아무리 흥미진진해도 국가대표 축구 평가전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시청자들도 그것을 알기에 출연진들의 실력 향상이나 승리보다 보통 아재들의 웃음을 공유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몇 개의 얼굴을 돌려쓰며 나타났던 삶의 고민들과 과분한 영광의 순간들을 내려놓고, 정제되지 않아 오히려 더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중년 아저씨들. 아재라 불리우는 그들에게 맞춰진 초점은 아무짝에도 쓸데없지만 그래서 더 빛나는 천진난만함이었습니다. 언제나 저 높은 곳에서 고고하게 빛나는 줄만 알았던 스타들이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이라는 동지적 쾌감을 뜨겁게 안겨주기 위해서 말이죠.

또 하나의 인기 아재 예능이 있습니다.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채널A). 낚시 전문 채널도 아닌 종합편성 채널에서 낚시 덕후들이나 볼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이 처음엔 의아스러웠는데 벌써 100회째 순항중입니다. 낚시광으로 정평이 나있는 이덕화와 이경규를 중심으로 매회 게스트를 초청하여 낚시를 합니다.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갖고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처럼 낚시에 빠진 이 아재들은 순수함으로 빛납니다. 상대방 보다 큰 고기를 잡기 위해 낚싯대에 집중하고, 대어를 낚아 올렸을 때는 가장 큰 소리로 환호성을 지릅니다. 다 잡은 고기와의 사투에서 졌을 때 부러진 낚시대를 부여잡고 투정부리는 모습은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엄마 앞에서 울부짖는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뭉쳐야 찬다>도 그렇고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도 그렇고 아재들은 축구와 낚시를 엄청 재미난 놀이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위대한 아재의 마력이지요.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이야기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아재들의 축구 이야기 <뭉쳐야 찬다>는 신납니다. 일요 과부의 주범이라며 대책없는 비난의 대상이 된 낚시도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에선 손에 땀을 쥐게하는 요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이 아재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괜히 울컥, 뭉클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천당과 지옥 앞에서 발버둥치며 버텨온 아재들의 삶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우리들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남편이기도 하고, 언젠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갈 아들이기도 한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 보이더라구요. 그 아재들을 이렇게 멋지게 놀게 해준 시간이 더 없이 아름답습니다. 아재들이여 영원하라!

공희정 콘텐츠평론가  tigerheehe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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