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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의 고소한 19>를 보는 이유, 혹은 변명
위근우 방송평론가 | 승인 2013.03.18 10:59

   
 
솔직히 말하겠다. 정치인으로서의 강용석은 여전히 좋게 봐주기 어려운 과오를 많이 범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치인 강용석과 방송인 강용석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논리는, 김구라나 강호동처럼 잘 나가던 MC들이 과거의 과오가 밝혀질 때마다 활동 중단을 선택하던 사례만 보더라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현재 케이블과 종편을 통해 활동 중인 방송인 강용석은 도저히 좋아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문제는 이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진행하는 tvN의 <강용석의 고소한 19>(이하 <고소한 19>)는 재밌다는 것, 본방 사수를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채널을 돌리다가 만났을 때 쉽사리 다른 채널로 넘기기 어려울 만큼의 중독성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싫어하는 사람이 진행하는 데도 불구하고 재밌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그’가 진행해서 재밌다는 것이다. 앞서 솔직히 말하겠다고 했지만, 이것은 그래서 솔직하고도 부끄러운 고백일지 모르겠다.

이미 제목에서부터 모방의 대상으로 삼은 Mnet <재용이의 순결한 19>의 전성기 시절 같은 재치가 <고소한 19>에는 있다. 대학교 등록금 원가를 비롯해 높은 마진율의 상품 원가 공개, 서울대 배출 명문고 순위 같은 민감한 주제부터 역대 가장 황당한 대통령 당선 공약 같은 코믹하면서도 시의적절한 주제들을 아우르면서도 절대 심각하지 않게 다룰 줄 안다. 가령 옷값이 라벨 때문에 뻥튀기되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뻥튀기 장사의 사진을 올리는 식의 인터넷 ‘짤방’ 문화를 적절히 활용하는 식이다. 호불호를 떠나 MC로서의 강용석 역시 합격점이다. 전문 방송인 못지않게 매끈한 언변도 언변이지만 김정일 사망 소식이 며칠이나 지나서나 알려진 사건에 대해 말할 때 국회의원 시절 겪은 일화를 들려주고, 생수 원가가 주제일 땐 P사의 탄산수가 실제 탄산수가 아닌 정제수에 탄산가스를 넣은 제품이라는 토막 상식을 제작진과의 사담 형식으로 적재적소에 넣는 건 타고난 센스다. 프로그램 스스로도 표방하는 바지만, <고소한 19>는 요컨대 깨알 같다.

   
▲ tvN '강용석의 고소한 19'를 진행하는 강용석 전 국회의원
하지만 그저 이러이러한 장점이 있기에 강용석이라는 불편한 MC를 참아줄 수 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궤적을 볼 때 결코 호감이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존재감이 이 프로그램에선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앞서 <재용이의 순결한 19>를 정서적 원류로서 이야기했지만, <고소한 19>가 이 전설적 프로그램의 진정한 적자라면 어떤 황당하고 민감한 주제건 이것이 19위부터 1위라고 자신 있게 표방하는 특유의 뻔뻔하고 거침없는 태도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고소 전문 정치인이라는 본인의 치부를 희화화하며 그마저도 프로그램의 재미 요소로 끌어들이는 강용석의 뻔뻔함이 있다. 과거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했을 때도 그렇지만, 과연 다른 사람에게 부당하게 정신적 부담을 지우는 고소 행위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 건 위험할 수 있다고 본다. 하여 상당히 재밌게 잘 만든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고소한 19>를 보는 건 어딘가 불편하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꺼림칙한 기분, 무언가 잘못된 일에 공모하는 이 기분이야 말로 소위 길티플레저(guilty plapleasure, 금지된 일을 하며 느끼는 짜릿한 기분, 혹은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대상)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tvNGELS>를 비롯해 초기 tvN은 길티플레저의 천국이었다. 흔히 길티플레저를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라 말하지만, 오히려 그 죄책감, 은밀하고 뭔가 깔끔하진 않은 일에 동참했다는 기분 때문에 좋아하게 되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 탄탄한 만듦새나 번뜩이는 센스는, 그 자체로도 프로그램을 볼 이유가 되지만, 또한 길티플레저를 즐기는 이들에게 일종의 알리바이를 선사한다. 굉장히 선정적이고 야한 프로그램이 범람하던 초기 케이블 자체 제작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초기 tvN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러한 죄책감과 알리바이를 동시에 제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tvN을 비롯해 케이블 예능은 이제 공중파의 그것과 큰 차이 없는 출연진과 만듦새에 근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길티플레져는 공중파가 도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케이블의 중요 경쟁력이다. <고소한 19>가 탁월한 건 이처럼 케이블만이 가능한 콘텐츠를 별다른 논란 없이 정착시켰다는 것에 있다. 이것을 케이블의 미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계속해서 규모를 키우는 것에 경도된 케이블 예능에 어떤 힌트를 제시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이 프로그램을 보는 내 심정은 복잡하겠지만.

 

위근우 방송평론가  guevara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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