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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비상을 꿈꾸며 <나빌레라>
공희정 콘텐츠평론가 | 승인 2021.04.28 18:02

이런 드라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tvN 나빌레라>. 나이 일흔에 발레를 시작한 ‘덕출’과 스물셋 꿈 앞에서 방황하는 발레리노 ‘채록’의 이야기입니다. 녹녹하지 않은 삶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꿈은 언제나 다가옴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죠. 어린 시절, 극장 문틈으로 보았던 비상하는 발레리노의 몸짓은 황홀했지만 발레를 향한 꿈은 덕출에겐 사치였습니다. 채록은 축구 선수로 성장했지만 열아홉 늦은 나이에 발레를 할 때만 자신의 가슴이 설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채록은 덕출의 발레 선생님이 되었고, 덕출은 채록의 학생이자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발레 수업을 위한 첫 테스트를 받게 된 덕출. 처음 입어보는 발레복은 쑥스러웠지만 그것만으로도 발레리노가 된 듯 기뻤습니다. 멀어져가는 극장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가야만 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죠. 손을 위로 올린 채 발끝으로 일분 동안 서 있기. 당연히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연습했습니다. 발레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그의 몸은 강렬히 저항했고 비틀거리다 넘어지길 수십 번이었지만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인생에서 가장 긴 60초에 도전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버텨내는 그 순간은 그의 인생에서 아름다운 또 하나의 기억이 되었습니다.

축구 감독인 아버지가 사고로 교도소에 가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버린 후 채록은 혼자가 되었습니다. 발레도 해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하는 그는 꿈에만 몰입할 수 없었죠. 게다가 부상으로 재활 치료도 병행해야 했는데, 그런 그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채록이 아버지 때문에 축구를 그만두게 되었다며 끊임없이 괴롭히는 친구 호범이었습니다. 덕출은 호범에게 한 마디 합니다. “채록인 그런 아이가 아니야..... 괴롭히지마 채록이. 채록인 크게 날아오를 사람이야” 의심하나 없이 오롯이 자신을 믿어주는 덕출의 진심에 채록의 마음은 촉촉이 젖어들었습니다.

덕출에게는 취준생 손녀 은호가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고 공평하지도 않았습니다. 인턴쉽 통과를 빌미로 사적인 일을 시키고도 객관적으로 우수했던 은호를 탈락시킨 점장은 모든 책임을 은호에게 돌렸습니다. “자기 책상 하나 갖겠다고 막 사회에 들어선 젊은이들 이용해 먹고..... 저는요 요즘 아이들에게 해 줄 말이 없어요. 미안해서요. 열심히 살면 된다고 가르쳤는데 이 세상이 안 그래. 당신 같은 사람이 자리 꿰차고 앉아 있으니까. 응원은 못해줄망정 밟지는 말아야지. 부끄러운 줄 알아요” 덕출의 이 말은 손녀 은호를 대변하는 말이자 지금을 살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기성세대들의 사과이기도 했습니다.

혹시나 하던 걱정, 덕출은 알츠하이머 환자였습니다. 발레를 시작하면서 채록을 돌보기 위해 무언가 적는 줄 알았는데 그의 수첩에 적힌 글들은 사라져가는 자신의 기억을 잡아두기 위한 처절한 족적이었고, 자신이 누구인지 잊었을 때를 대비한 최후의 증명이었습니다. 그것을 우연히 보게 된 채록은 덕출이 자신에게 그러했듯, 이제는 자신이 덕출을 지켜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흰 눈이 흩날리던 어느 날, 기억의 길을 잃어버린 덕출은 매일 오가던 길에서 한 발도 떼지 못한 채 서 있었습니다. 마치 낯선 세상 속으로 들어온 이방인처럼 말이죠. 채록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덕출은 불안에 떨었고, 그의 기억을 살려내기 위해 채록은 어둠이 내린 거리에서, 오로지 덕출만을 위해 발레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사는 것이 참 고단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믿고 의지할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고, 나이든 사람들은 자기주장만 분명한 젊은 사람들이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다름을 흔쾌히 인정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덕출과 채록이 발레를 통해 보여줄 아름다운 세상에는 그런 믿음과 여유가 함께 하겠지요? 꿈을 향한 그들의 비상을 보며 저는 ‘드라마는 이러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희정 콘텐츠평론가  tigerheehe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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