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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채널의 진격
위근우 방송평론가 | 승인 2013.04.16 14:47

TV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반 의무적으로 공중파 드라마와 예능을 살펴야 했던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선 공중파를 소홀히 볼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낮부터 새벽까지 하릴없이 TV를 틀어놓으며 영화와 스포츠, 애니메이션 위주로 채널을 돌린 것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상>이나 <남자 고교생의 일상>, <너와 나>처럼 코믹하면서도 별다른 뒤틀림 없는 애니메이션들을 조금은 이완된 감정으로 채널을 고정하며 본 것도 당시의 느슨한 생활 패턴을 생각한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지난해 모든 TV 콘텐츠를 통틀어 유일하게 본방 사수를 한 것이 애니메이션 <소드 아트 온라인>이 될 것이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지난해 최고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소드 아트 온라인>이 얼마나 참신하고 흥미로운 작품이었는지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해당 작품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던 나조차 본방 사수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방영한 이 작품은, 현지 방영일로부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거의 동시 방영 수준으로 국내 시청자에게 소개됐다. 많은 팬들이 여러 애니메이션 채널 중 애니플러스를 가장 마니악한 채널로 인정하는 건 그래서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동시 방영할 만한 신작을 네티즌에게 추천 받고, 매 분기별로 동시 방영 신작을 공개하는 애니플러스의 시스템을 통해, <소드 아트 온라인>을 비롯해 현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빙과>, 타입문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페이트 제로> 같은 흥행작부터 <나는 친구가 적다>나 <백화요란 사무라이 걸즈> 같은 하렘물까지, 국내에선 전문 커뮤니티에 속하지 않고서는 이름도 들어보기 어려운 작품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방영됐다.

엄청난 메가히트를 기록한 <원피스>를 보는 것조차 ‘오타쿠’로 몰리는 국내 분위기에서 애니플러스가 가진 위상은 독보적이되 한정적이다.

   
▲ 타입문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페이트 제로>

최근 방영을 시작한 <진격의 거인>은 그래서 이 채널의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소년 점프> 스타일의 소년 만화와는 거리가 먼, 그래서 일본 현지에서도 독특한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이 만화는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된 것부터 나카지마 테츠야 감독 연출로 영화화가 결정되고, 4월 현지 애니메이션 첫 방영되는 것까지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의 중심이 됐다. 각 이슈가 터질 때마다 국내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린 건 물론이다.

이것은 지난해 게임 <디아블로3>가 발매됐을 때, 게임 유저가 아닌 이들에게도 그 사실이 화제가 되고 대화의 중심에 섰던 것을 연상시킨다. 

요컨대 모두가 보는 만화는 아니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만화다. 하여 애니플러스의 <진격의 거인> 방영은 탁월한 선택이다. 단순히 유명한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가 아니라서 그렇다.

가상현실 게임에 갇힌 이들의 실존적 고민을 판타지 만화 특유의 경쾌함으로 풀어낸 <소드 아트 온라인>이나, 폭발적인 액션 시퀀스를 보여주면서도 선을 실현하기 위해 방법론적 악은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지 질문하던 <페이트 제로>처럼, 애니플러스가 골라오는 흥행작은 작품성과 재미뿐 아니라 동시대 재패니메이션의 성과에 목마른 마니아들의 허기까지 충족해줬다.

   
▲ 일본 현지에서도 독특한 성공 사례로 꼽히는 모두가 보는 만화는 아니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만화, 진격의 거인

재패니메이션이라면 지브리 스튜디오나 <아키라>, <공각기동대> 같은 디스토피아적 SF, 혹은 <드래곤볼>부터 <원피스>로 이어지는 점프 소년물 정도만 떠올리는 국내 환경에서, 애니플러스는 말하자면 <에반게리온> 이후에도 끊임없이 동시대적인 충격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작품을 들여왔다.

<진격의 거인>은 이러한 기조를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적 관심까지 모을 수 있는 작품이다. 즉 가장 핫한 애니메이션 채널로서의 독보적 지위를 유지하는 동시에 제한적인 시청층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진격의 거인> 1화에 대한 마니아들의 절대적 지지의 반응과 대중의 호기심이 뒤엉킨 현재, 애니플러스는 이 신드롬의 바람을 타고 유의미한 확장을 이룰 수 있을까.

과연 이 채널이 거인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확실히 진격을 위한 일보는 내딛은 것 같다.

위근우 방송평론가  guevara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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