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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마켓>, 권위로부터 탈출한 요리
위근우 ize 취재팀장 | 승인 2013.10.28 17:38

영단어 taste는 맛이라는 뜻과 취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말에서도 자신의 취향에 대해 ‘입맛이 맞다’는 표현을 쓰는 것처럼, 오감 중에서도 유독 미각은 취향의 문제로 환원된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것의 아름다움이나, 귀로 듣는 음악, 손끝을 통한 손맛 등 모든 종류의 감각에는 개인의 취향이 개입하지만 미술과 음악이 그 수준의 높고 낮음에 대한 어떤 이론을 정립했다면 미각은 그보단 평등한 차원으로 받아들여진다. 흔히 말하는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라는 말이 가장 힘을 발휘하는 건 역시 맛이다. 이 세상 맛있는 음식의 숫자는 어머니의 수와 같다는 만화 <식객>의 대사처럼. 요컨대 권위의 문제가 아니다.

   
'크레이지마켓'의 한 장면
그 자체로는 미각과는 별 연관이 없는 올‘리브 채널의 요리 퀴즈쇼 <크레이지 마켓>을 보며 요리와 취향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건 그래서다. 공중파와 케이블을 통해 등장하는 수많은 종류의 음식 프로그램은 결국 ‘더’ 맛있는 무언가를 찾고 평가한다. 유명 음식점을 찾아가 맛을 품평하는 맛집 프로그램들이 그러하며, 참가자가 만든 음식 중 무엇이 더 맛있는지 가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QTV <예스 셰프>나 올‘리브의 <마스터 셰프 코리아>, <한식대첩> 등이 그러하다. 이들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혀를 더 강하게 유혹하는 음식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욕구이고, 그에 대한 줄 세우기가 흥미로운 것도 당연하다. 다만 여기서 무엇이 더 맛있다고, 무엇은 맛이 별로라고 평가하는 이들에게 부여되는 권위라는 것이 가끔은 불편하다. ’먹방‘에 능한 예능인 MC건, 맛의 고하를 나누는 심사위원이건.

그에 반해 ‘감을 잡으면 돈이 보인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퀴즈쇼인 <크레이지 마켓>에서 권위란 것이 끼어들 틈은 없다. 미묘한 차이의 세 가지 ‘와삭’ 소리를 들려준 뒤 무엇이 사과를 베어 먹는 소리인지 물어보는 이 기상천외한 질문에 과연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강레오 심사위원이 온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악마 같은 카리스마의 에드워드 권이 백퍼센트 맞출 수 있을까. 물론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맛이 있고 없음에 대한 권위를 해체하는 건 아니다. 대신 요리라고 하는 영역에 전문가나 규격화된 레시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그저 유희하듯 보여줄 뿐이다. 맞춰서 상금을 타면 좋지만 틀렸다고 부끄러울 일은 아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요리는 몇몇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처럼 힘들고 긴장감 가득한 작업이 아닌, 즐거운 놀이처럼 그려진다.

제한 시간 안에 음식을 더 빨리 먹거나, 녹즙 안의 맛을 감별해내는 흥미로운 미션들 중에서도 일반인과 전문가들이 펼치는 대결은 그래서 더 눈이 간다. 전문 요리사와 야식 전문가로서 요리 프로그램의 터주 대감이 된 만화가 김풍으로 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듯, 이들 전문가는 이 프로그램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토록 황당한 미션들을 일반인 혹은 연예인 출연자와 함께 수행하며 종종 실수하고 종종 패배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가령 전문 요리사가 어묵을 꼬치에 꽂는 미션에서 불량 꼬치를 만들거나, 연예인 출연자인 레이디스 코드가 슬라이서로 무채를 써는 동안 칼로 채를 썰며 긴장하는 모습 등은 과거 어떤 요리 프로그램에서도, 심지어 가장 인간적인 요리사 중 하나인 제이미 올리버의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없던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 직접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면에서 더 긍정적이다. 사실 이 프로그램에서 주는 요리 팁이란 거창하지 않다. 주황색 파프리카가 다른 색보다 비타민C가 풍부하다거나, 볶음밥에서 양파의 크기가 균일해야 식감도 균일하다는 정도다. 하지만 거창할 게 없다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요리는 감에 따라 이런저런 실패가 겹쳐져도 괜찮은 일이 된다. 요리 서바이벌에서 나보다 훨씬 뛰어난 요리 실력을 지닌 도전자들이 팩팩 나가떨어지는 걸 보며 주눅 들었던 마음가짐과는 전혀 다르다. 저 평범한 사람들도 계란 빨리 깨는 걸로 돈을 버는데, 나도 어디 한 번 간단한 것부터 연습해볼까, 하는 이 자신감이야 말로 <크레이지 마켓>이 상당히 괜찮은 요리 프로그램인 이유일 것이다.

 

위근우 ize 취재팀장  guevara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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